꿈은 생선이다

꿈은 생선이다

“꿈에도 신선도가 있다.”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참 고민 끝에 음악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친구는, 마침내 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았다.
꿈을 향해 문이 열린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문 앞에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까지인가 봐.”

생각해보면 그 꿈은 20대 초반,
혹은 더 어렸을 때 마음에 품은 것이었다.
그땐 간절했고, 눈이 반짝였고,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된 지금, 그 꿈은 여전히 빛나지만,
지금의 그는 그걸 ‘지금’의 삶 속에 데려와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꿈도 생선처럼, 신선한 상태에서 맛보는 게 가장 좋다.
너무 오래 냉장고에 두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나를 상하게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20대 때 너무나 멋지다고 느낀 한 지역이 있었다.
막연히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고,
십 년이 넘는 시간 끝에 결국 그 꿈은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벅찼다.
‘드디어 나의 꿈이 이루어졌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방인이 바라보던 그 도시는
주민이 된 내가 마주하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은 도시, 낯선 제약들, 내가 가진 능력을 충분히 펼치기엔 불리한 조건.
그렇게 다시 십 년이 지나, 그 지역을 나오는 것이
내 다음 꿈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꿈이 이루어진다는 건 항상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이뤄진 시점의 내가, 그 꿈을 처음 꿨던 ‘그 나’와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생각한다.
꿈은 ‘현실과 손을 잡을 때’ 비로소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너무 높지도, 너무 낡지도 않은 꿈.
지금의 나와 함께 숨 쉴 수 있는 꿈.

돌아보면 나는
아주 높은 이상을 좇기보다는,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도전하고 경험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작은 활동들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나누고,
나름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일들을 해왔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나니까,
지금은 특별히 미련이 없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것 중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걸
기꺼이 건네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내는 일.

그게 어쩌면,
내가 품었던 가장 깊은 꿈이 아니었을까?

꿈이 상하기 전에,
잘 꺼내 먹을 것.
그리고 너무 오래 묵힌 꿈은,
감사히 보내줄 것.
그건 결코 실패가 아니라,
인생과의 아름다운 타협이다.

꿈은 생선이다.
가장 맛있을 때를 잘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