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지 않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도 재능이다.
그렇게 보면, 나는 아주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닌가 보다.
어제, 고객사 사장님과 면담을 했다.
처음 계약할 때 약속했던 항목들을 거의 100% 완료한 상황이었다.
그 성과를 보고 드린 뒤, 앞으로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최소한의 업무만 남기고 손을 떼고 싶다고 제안드렸다.
제안이라고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퇴 선언이었다.
컨설턴트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컨설턴트’라는 말은 겉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정작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잠을 잘 자게 하면 수면 컨설턴트, 밥을 잘 먹게 하면 식습관 컨설턴트.
이름만 들어서는 감이 잘 안 오는 직업이다.
경영 컨설턴트가 기본값이긴 하지만,
경영도 인사, 마케팅, 재무, 전략 등 가지가 많다 보니, 결국 애매하긴 매한가지다.
그 애매함이 종종 불편하게 다가왔다.
나는 원래 인사쪽으로,
개인 카운셀링과 코칭을 오래 해왔다.
그러다 기업으로부터 제안을 받았고,
‘오, 이제는 이 롤플레잉 게임에서 레벨업을 한 건가?’
싶은 마음으로 컨설턴트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반, 아니 2년 가까이 해보니,
레벨업이 아니라, 싸우는 던전만 바뀐 거더라.
싸운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업이라는 공간은 훨씬 명확한 타겟과 목표치를 설정해야 하고,
다수를 상대해야 하니 예외를 두지 않고,
정해진 범위 안에서만 문제 해결과 상담을 해야 했다.
그만큼 보상도 크고 효율도 좋았지만,
할수록 마음속에서 이렇게 울렸다.
“재미없다.” “나답지 않다.”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나답다’는 것도 어쩌면 익숙함에 대한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엔 깨달았다.
나는 변칙과 혼돈이 난무하는 야생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작년에 회사에 일을 처음 맡았을 때 만들었더 ‘할 일 리스트’를 다시 보니,
어찌어찌 멱살잡고 하나하나 다 해결해온 게 보였다.
그래서 사장님께 말했다.
“전부 클리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스테이지가 바뀐 것 같습니다.”
내가 없어선 안 될 일이 몇 개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일은 더 적은 금액으로 전부 원격으로 돌린다는
제안을 드리고 나왔다.
야생으로 돌아가면
막 무쌍을 찍을 만큼의 실력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통장 잔고나 배짱이 자랑할 정도 있는 것도 아니다.
괴롭다. 괴로운데, 괴로움에도 질質이 있고 색色이 있다.
명함을 내밀며 “저는 컨설턴트입니다.”
라고 소개할 때마다, 팔다리에 닭살이 짜르르 돋았다.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
‘입고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거부 반응과 위화감은 더 선명해졌다.
게다가 내가 담당했던 건 인재 육성 분야.
내가 이렇게 안 맞는 옷을 입고(비록 겉으로 볼 땐 멀쩡해 보여도)
사람들 앞에서 적성과 강점, 캐리어에 대해 말하는 게 맞는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면서,
내 갈등도 깊어졌다.
사람이든, 일이든, 장소든
안 맞는 건 내 마음과 몸이 제일 먼저 안다.
나는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내가 ‘신분 상승’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착각이었던 것 같다.
사막 한가운데 우직하게 서 있는 돌이 멋져서,
부잣집 정원에 옮겨져 놓이자
그 야생의 존재감, 매력을 잃어버렸다.
돌아가기로 했다.
야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