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의 서랍 속에, 혹은 스마트폰 갤러리 어딘가에,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잊혀진 ‘언젠가 할 일’ 목록이 쌓여 있지는 않나요?

‘이번 여름엔 꼭 서핑을 배우겠어!’ 하고 야심 차게 결제했던 강습권, ‘내 방을 갤러리처럼 꾸밀 거야!’ 다짐하며 구입했던 스케치 도구 세트, 아니면 ‘하루 10분 운동’ 앱의 첫 화면에서 멈춰버린 알림들처럼 말이에요.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당신의 머릿속은 이미 활기찬 미래로 가득 찹니다. 완벽한 파도를 타는 내 모습, 근사한 그림을 완성한 희열, 건강해진 몸으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상상. 그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당장이라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샘솟죠.
하지만 막상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 용기 대신 따뜻한 이불이 그리워지고, 흰 스케치북의 빈 공간이 주는 압박감에 ‘그냥 사진이나 찍을까’ 싶어집니다. 규칙적인 운동의 고통 앞에서는 ‘내일부터 하자’는 달콤한 유혹이 속삭이죠.
결국 당신은 시작했던 일을 스르르 놓아버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나는 역시 끈기가 부족해.”, “남들은 잘만 하던데, 난 왜 이럴까?”, “시작만 하고 끝을 못 보는 내가 너무 싫다.” 이런 자책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곤 합니다.
만약 이 이야기에 당신의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면, 이 글은 바로 당신을 위한 글입니다. 당신이 끈기가 부족하거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속에는 ‘즐거운 재미를 추구하는 아이’와 ‘평화로운 안정을 사랑하는 현자’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마음이 손을 잡을 때, 우리는 ‘편안함’이라는 아주 강력하고 달콤한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되기 쉽습니다.
오늘은 그 울타리의 정체를 파헤치고, 당신의 가능성을 갉아먹는 그 ‘편안함’이라는 덫에서 ‘가장 안전하게’ 탈출하는 방법을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왜 나는 항상 제자리일까?”: 당신이 ‘어려운 재미’를 피하는 진짜 이유
당신이 새로운 도전을 자꾸만 미루고, 하던 일도 금방 흥미를 잃는 것은 결코 ‘게으름’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은 누구보다 즐겁고 평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아주 현명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상황 1: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 팀원을 뽑을 때
팀장님이 묻습니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TF팀, 아주 도전적이고 배울 게 많을 텐데, 혹시 지원해 볼 사람?”
동료들의 눈이 반짝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누군가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손을 들고 싶어 하죠. 하지만 당신의 머릿속은 복잡해집니다. ‘새로운 일? 그럼 야근도 잦아지겠지? 모르는 사람들이랑 일하면 어색하고 피곤할 텐데… 지금 하는 일도 나쁘지 않고, 지금 팀원들이랑도 편한데 굳이…?’
결국 당신은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고 맙니다. 새로운 기회가 주는 ‘성장의 즐거움’보다,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할 ‘예상되는 불편함’과 ‘깨져버릴 안정감’의 무게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도전’은 설렘보다는 ‘스트레스’와 동의어에 가깝습니다.
상황 2: 친구들과의 주말 약속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이번 주말에 우리 새로운 방탈출 카페 가볼래? 엄청 어렵다고 소문났던데, 깨면 진짜 짜릿할 것 같아!”
분명 솔깃한 제안입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언제나 즐거우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려운 방탈출? 머리 아프고 시간 안에 못 풀면 스트레스받을 것 같은데. 그냥 만나서 맛있는 거나 먹고 편하게 수다 떨면 안 되나?’
결국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죠. “아, 좋긴 한데… 나는 그냥 우리 자주 가던 카페에서 얘기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이처럼 당신은 본능적으로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안정과 즐거움을 얻는 길’을 탐색하는 데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즐거움을 원하지만(열정적 성향), 그 즐거움을 얻기 위해 굳이 힘든 과정을 거치고 싶지는 않은(평화적 성향)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죠.
이것은 엄청난 장점입니다.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능력이니까요. 하지만 이 성향이 너무 강해지면,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편안하지만 변화 없는’ 삶에 머무르게 되는 ‘덫’이 될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뭐.” 하는 안도감이, 사실은 당신의 날개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던 셈입니다.
2. ‘안전지대’ 한 뼘 넓히기: 가장 안전한 3단계 심리 훈련법
자,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당신에게 “안전지대를 박차고 나와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히세요!”라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건 당신의 기질에 맞지 않는, 폭력적인 조언일 뿐입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극복’이 아닌 ‘현명한 관리’입니다. 지금의 편안함을 유지하면서도, 울타리를 아주 조금씩, 딱 한 뼘만 넓혀나가는 안전한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1단계: ’10분의 법칙’으로 시작의 허들 부수기
당신이 무언가를 시작하기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일의 전체 과정’이 주는 압도감 때문입니다. ‘영어 공부’를 생각하면 두꺼운 책과 수많은 단어, 복잡한 문법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질려버리는 식이죠.
이제부터는 목표를 ‘과정’이 아닌 ‘시간’으로 바꿔보세요. 바로 ’10분의 법칙’입니다. “오늘 영어책 1챕터를 끝내겠어!”가 아니라, “오늘 딱 10분만 영어책을 들여다보겠어.”라고 목표를 세우는 겁니다. 헬스장에 가서 1시간 동안 땀 흘릴 생각을 하면 숨이 턱 막히지만, “일단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 위에서 딱 10분만 걷고 오자.”라고 생각하면 어떤가요? 훨씬 만만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신기하게도, 일단 ’10분’을 시작하면 관성이 붙어 15분, 20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령 정말 10분만 하고 그만두더라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시작했다’는 성공 경험을 얻었고,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났으니까요. 이 작은 성공이 쌓여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줍니다.
2단계: ‘불편함 예약제’로 마음의 준비 시간 갖기
당신은 예측 불가능한 불편함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갑작스러운 변화나 도전은 당신을 얼어붙게 만들죠. 그렇다면 그 불편함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면 됩니다. 바로 ‘불편함 예약제’입니다.
달력이나 다이어리에 ‘불편함과 만나는 시간’을 미리 약속해두는 겁니다. 예를 들어,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평소에 안 읽던 분야의 책 3페이지 읽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낯선 동네의 카페 혼자 가보기’ 처럼요.
이렇게 하면, 그 불편한 활동이 ‘갑자기 닥쳐온 위기’가 아니라 ‘내가 통제하는 계획의 일부’가 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생기고, 불편함에 대한 저항감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오늘은 불편해지는 날이군’ 하고 차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거죠.
3단계: ‘과정 쪼개기’로 작은 성취감 맛보기
당신은 결과가 너무 멀게 느껴지면 쉽게 지치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종 목표까지 가는 길이 너무 길고 험난해 보이면, 아예 출발할 엄두조차 내지 않죠.
그렇다면 최종 목표까지 가는 길에 작은 징검다리를 놓아주세요. 거대한 목표를 아주 잘게 쪼개어, 과정 하나하나를 작은 목표로 만드는 겁니다. ‘블로그 글 1편 완성하기’가 목표라면, ① 주제 정하기, ② 자료 조사하기, ③ 개요 짜기, ④ 초고 쓰기, ⑤ 퇴고하기, ⑥ 발행하기. 이렇게 6개의 작은 목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단계를 끝낼 때마다 스스로에게 작은 보상을 해주세요. 개요를 다 짰다면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초고를 완성했다면 좋아하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먼 미래의 큰 성취감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작은 성취감과 보상을 통해 즐겁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당신의 ‘단점’은 사실 눈부신 ‘강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당신이 ‘편안함’이라는 덫에 갇히는 이유와 그곳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당신이 ‘단점’이라고 여겼던 그 성향들이, 사실은 얼마나 눈부신 ‘강점’인지 아시나요?
‘갈등 회피’는 탁월한 ‘평화 유지력’입니다.
당신은 조직이나 모임에서 절대 먼저 목소리를 높이거나 갈등을 만들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주관이 없다’고 오해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모두의 감정을 살피고,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평화 유지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있기에 팀의 분위기는 부드러워지고, 사람들은 당신 곁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날 선 대립이 오가는 회의실에서, 모두가 당신의 차분한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경험, 분명 해보셨을 겁니다.
‘변화 기피’는 놀라운 ‘안정감과 꾸준함’입니다.
당신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는 더딜지 몰라도, 한번 ‘내 것’이 된 루틴이나 관계는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지켜나갑니다. 변덕이 심한 세상 속에서, 당신의 한결같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를 줍니다. 당신은 쉽게 사람을 판단하거나 떠나지 않는 든든한 친구이자,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조직의 기반을 다지는 믿음직한 동료입니다.
‘어려운 재미 회피’는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는 능력’입니다.
누군가는 거창한 목표를 이루고, 짜릿한 모험을 해야만 행복을 느끼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마시는 커피 한 잔, 좋아하는 친구와의 편안한 수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보는 영화 한 편에서 누구보다 큰 행복을 느낄 줄 압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는 바로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것,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가요?
이제, 당신의 편안함을 무기 삼아 나아가세요
당신은 ‘게으른 사람’이나 ‘의지박약인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 평온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며, ‘일상의 작은 반짝임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그 편안함을 사랑하는 기질은 저주가 아닌, 축복입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다그치지 마세요. “왜 난 도전하지 못할까?”라고 자책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이 도전을 좀 더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바꿔보세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채찍질이 아니라, 당신의 속도에 맞는 ‘안전하고 즐거운 길’을 찾아내는 지혜입니다. 오늘 알려드린 3단계 훈련법을 통해, 당신의 아름다운 ‘안전지대’를 아주 조금씩, 당신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넓혀나가 보세요.
그 울타리 너머에는, 지금의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다채로운 세상이 당신의 편안한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